2013년 12월 11일 수요일

경영학 러시아 영화의 역사와 시작 및 혁명전후 조사분석 (A+자료)

경영학 러시아 영화의 역사와 시작 및 혁명전후 조사분석 (A+자료)
[경영학] 러시아 영화의 역사와 시작 및 혁명전후 조사분석 (A+자료).hwp


목차
1. 러시아 영화의 시작

2. 러시아혁명 후부터 소련 붕괴까지의 영화

2. 몽타쥬 이론이란

3. 혁명이전의 러시아영화

1) 드란코프

3. 혁명 후 소비에트 영화

1.1918~1929년도의 소련 영화

2.1929~1939년도의 영화들

3.1952년 이후의 소련 영화



본문
그는 에이젠슈테인과는 대조적으로, 배우의 연기나 연극성을 반드시 부정하지는 않았으며, 이러한 두 사람의 논쟁이 오히려 소련의 영화이론을 발전시켰다. 또한, 토키 영화의 출현에 즈음하여 에이젠슈테인, 푸도프킨, 알렉산드로프 등 3명이 연명으로 발표한 《토키에 관한 선언》(1928)은 그 예술적 선견성으로 유명하다. 대표작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최후 The End of St.Petersburg》(1927) 《칭기즈칸의 후예 Storm Over Asia》(1928) 《탈주자 Dezertir》(1933) 《스보로프 장군 General Suvorov》(1940) 《나히모프 제독(提督) Admiral Nakhimov》(1946) 등이 있다. 그의 작가적 경력이 후반기에 가서는 오히려 부진한 편이었는데 그것은 아마 소련의 영화계가 ‘스탈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인 간섭의 강화로 말미암아 경직(硬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ㅡ 에이젠슈타인 과 몽타주이론 ㅡ
리가 출생. 독일계 건축기사의 아들로 태어나 건축을 공부하였다. 러시아혁명 때는 선전반의 무대나 미술방면에서 활약하였고, 내전 후에는 프롤레트쿨트극장에서 연출가로 활약하였다. 1925년 제1회 감독작품 《스트라이크 Stachka》를 발표한 후, 몽타주이론을 실천하여 《전함 포템킨 Bronenosets Potemkin》(1925) 《10월 Oktjabr》(1927) 《오래 된 것과 새로운 것 Staroe i novoe》(1929)을 발표하여 소련영화의 황금기를 구축하였다.
유성영화기에 들어서서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Aleksandr Nevskij》(1938)와 《이반 뇌제(雷帝) Ivan Groznij》(1944∼45) 등을 제작하는 한편 우수한 영화 이론을 많이 발표하기도 하였다.
* 몽타주 이론
1 【영화】 몽타주 (기법) ((심리의 흐름을 표시하기 위하여 급속히 여러 소(小)화면을 연속시키는))
2 구성 사진, 합성화(畵)(photomontage), 몽타주 작품[영화, 음악, 문학 ((등))]
몽타주는 원래 ‘조립(組立)하는 것’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이다. 영화는 촬영(撮影)되는 것이 아니라 조립되는 것, 다시 말해서 원래 따로따로 촬영된 필름의 단편(斷片)을 창조적으로 접합(接合)해서 현실과는 다른 영화적 시간과 영화적 공간을 만들어 거기에 새로운 현실을 구축하여 시각적 리듬과 심리적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데서 영화의 예술성이 성립된다고 보고 그 방법을 명확하게 하려는 이론이 몽타주이론이다.
프랑스의 무성영화(無聲映畵) 이론과 미국의 그리피스 등의 실험작품들을 세밀히 연구해서 이론을 체계화시킨 것은 러시아의 S.M.에이젠슈테인, 푸도프킨 등이다. 1920년 그들은 많은 논문과 저서를 발표해서 보급에 힘쓰는 동시에 자작 《전함 포템킨》(1925, 에이젠슈타인) 《어머니》(1926, 푸도프킨) 등을 통하여 훌륭한 실천을 보여 주었다. ‘흡인(吸引)의 몽타주’ ‘상극(相剋)의 몽타주’ 등 특히 에이젠슈테인의 개성적인 제창이 중요시되었고, 무성영화시대에는 이 이론이 전(全)영화이론의 골격을 이루었다. 유성영화로 넘어오는 변혁과정에서도 지도적 구실을 하게 된 것은 음(音)과 화면과의 고차적인 ‘조립’을 명시한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이론(유성영화에 관한 선언)이었다.

★몽타주기법에 교과서전함 포템킨★
1. 전함 포템킨
전함 포템킨(원음에 충실하자면, 포촘킨이라고 읽어야 합니다만)이 영화
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을 듯 합니다. 1)이
영화가 거의 최초로 몽타쥬 기법을 도입한 영화라는 점, 2) 영화가 대중을


본문내용
촬영한 니콜라이 2세의 황제 대관식 풍경을 담은 영상물이었다.
러시아영화의 시작은 프랑스영화가 제작된 다음 해에 이반 막시모프,알렉산드로 메드베스킨등의 감독들의 기록영화로 부터 시작한다.
베스킨은 최초의 몰래 카메라 방식으로 니콜라이황실의 기록을 남겼다.
기록영화의 거장으로 불리우는 그는 연극과 영화를 결합시키는 시도를 하였다.영화기차를 타고 영화를 찍었던 그는 다소 풍자적인 시선으로 그 시대의 기록들을 남겼다.
그리고 러시아에 처음으로 영화가 출현한 것은 1896년 5월 프랑스의 뤼미에르영화사가 페테르부르크에 영화관을 개설한 때였다. 그리고 러시아인의 손으로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1908년경이다. 그후 무대연극을 그대로 촬영하거나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문예영화 등이 주류
 

댓글 없음:

댓글 쓰기